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잃어버린 10년/일본 (문단 편집) === 거품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youtube(hd8iJr80B7g)] 일본은 [[1950년대]] 이후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듭했다. [[6.25 전쟁|한국전쟁]] 특수와 효율적인 경제 전략 및 [[투자]]와 [[잇쇼켄메이|일본인의 근면성과]] 높은 [[저축]]률 등에 의한 것이었고, 1970년대 오일 쇼크도 거뜬히 극복하면서 이런 통념이 들어맞는 듯 했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 일본 경제가 [[오일 쇼크]]의 후유증을 완전히 벗어난 뒤로는 부동산과 주식 투기 열풍이 불게 되었고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인해 엔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경기가 갑작스럽게 침체되자[*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 상실로 인해 생산성 향상을 통한 정상적인 경제성장이 제약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항하여 구조 개혁을 통한 신산업 발굴을 하지 않고, 인위적인 돈 풀기로 버블을 만들었다.] 경기부양을 위해서 대출 규제를 완화하여 금리를 끌어내렸다. 이에 기업과 개인 투자자들이 대출 규제 완화를 기회 삼아 부동산과 주식을 대량으로 구매하며 부동산 가격과 주식 가격이 미칠 듯이 폭등하여 거품이 엄청난 수준까지 다다랐고, 자산 시장 거품으로 돈이 엄청나게 돌아다니다 보니 일반 직장인들도 보너스를 두둑하게 챙길 정도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직장인들에게 버블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간 건 아니었고, 더군다나 집을 미리 마련하지 못한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도심 지역 집값이 상상 이상으로 폭등해 있었기 때문에 집을 마련하려면 교외 지역으로 강제적으로 밀려나야 했기 때문에 버블 시기가 마냥 행복했던 건 아니었다. 물론 버블 시기 이전에 집을 마련한 사람들은 집값이 왕창 오르는 데다가 보너스도 넉넉하게 받았다.] 거품이 터지기 직전에는 '일본을 팔면 미국을 산다'는 말이 나오고 한 술 더 떠서 '''[[도쿄도|도쿄]]를 팔면 미국을 산다'''는 말[* 실제로 도쿄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본 전 국토를 팔면 미국을 4번 정도 살수 있었다.]도 나왔으며, 도쿄 [[긴자]]에서 제일 비싼 땅 값이 평방미터 당 10억원에 육박할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당시 일어난 일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 예를 들어 보면, * 채용 면접 때 기업에서 거마비[* 車(수레 거),馬(말 마). 쉽게 말해서 차비다. 한국에서도 과거에 거마비라는 명목으로 현찰박치기로 뇌물을 주는 관행이 있었다.]를 준다. 그것도 1인당 2~3만엔씩 쥐어줬다고들 한다.[* 한국에서도 좀 큰 중견 기업에 면접 보러 가면 면접비를 주지만 말 그대로 "차비"와 엇비슷한 금액을 준다. 조금 안 좋은 기업이라면 차비보다도 낮은 금액을 주기도 하고, 중소기업은 안 주는 곳도 많다.] 원채 일본의 교통비가 비싸다보니 일본기업이 차비는 후하게 주는편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감안해야 할 것은 지금의 한화 20~30만원이 아니라 "1980년대"의 2~3만엔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1990년대 초반 기준으로 한국의 평균 대졸초봉이 50만원대에 당시 도입된지 몇달 안되는 최저임금은 20만원대 수준이었다. 당시 환율에 맞춰 계산을 한다면 차비 한두번 받으면 한국에서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와 비슷한 돈을 받는거고 네다섯번 받으면 한국 대졸초봉과 비슷한 금액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한국과 일본 소득차이와 환율차 감안하면 실제로 3~4만원 받은셈이지만 당시 한국물가로 3~4만원은 일용직 하루 일당에 해당되는 돈이었으니 작은금액도 아니었다. 이러니 이건 뭐 여기저기 면접만 보러 다녀도 금방 부자될 기세였고 실제로 이런 식으로 기업에게 받은 돈이 수백만 엔을 넘는 사람이 많았다. * 기업들이 [[흑자도산|흑자가 나는데도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망했다]]. [[3D]] 직종이라서가 아니라 알바만 근근히 해도 먹고 살 수 있어서. 그외에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로 집에 돈이 넘쳐나서 취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고, 알바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니 편한 일이 아니면 굳이 취직을 하려 들지 않았다.[* 생각해보자. 나한테 1억원짜리 집 한채가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10억짜리 집이 되었고, 그 집을 팔아서 3억짜리 집 3채를 사고 남은 돈으로 차까지 샀으며 취미삼아 하는 알바로도 월 200만원 이상 벌 수 있다면 굳이 같은 값에 18시간씩 매일 일하는 회사에 취직하겠는가? 그리고 9억으로 산 집 3채는 몇년 뒤 30억이 된다. 이게 버블 경제였다. 당연히 집값이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계속해서 오르다보니, 집을 산 사람들은 버블이 꺼질 것을 예상하지 못한 채 집을 팔지 않고 가지고 있는다. (9억으로 산 집 3채가 몇년 뒤 30억이 됐으니, 더 기다리면 60억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그러나 버블이 꺼진 뒤 9억으로 산 집 3채는 다합쳐서 3~4억, 혹은 그 이하로 값이 뚝 떨어지면서 팔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 채 빈집으로 두게 된다. 그래서 상술된 빈집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소기업들은 생산직 사원을 구하지 못해서 버블 시대가 지옥 같았다고 한다. 다만 그 이후에는 경제가 막장화되며 또 다른 지옥이 시작되었다.[* 다만 이때 [[익절|거품에서 재빨리 빠진 운 좋은 이들은]]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 예금 이자율이 1%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에 쓰기만 하는 시대가 열려서 문제였다. 실제로 한국의 외환위기 직후에도 현금을 많이 축적한 사람들은 쏟아져 나오는 부동산과 주식 등을 헐값에 쓸어 담아서 이후 신흥 부유층으로 떠올랐다.] * 입사 시험에서 일부러 다 틀리게 냈는데 취직. 오히려 회사에서 대학들을 돌아다니며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세워서 취직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고. 버블 경기가 절정에 이르던 1989년부터 91년도까지의 통계를 보면 유효 구인 배율이 1.4 정도를 기록했는데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1.4개에 달했다는 뜻이다'''.[* 물론 현재의 일본의 구인 배율은 1.7정도이다. 물론 일본이 다른 국가에 비해 취업이 잘되는 편에 속하는 것은 맞지만, 수치가 높다고 하여 버블 붕괴 이전 시대보다 호황이라는 것은 아니다. [[통계의 함정|젊은 층이 넘쳐날 때의 1.4와 젊은 층이 말라가는 초고령 사회에서의 1.7은 엄연히 그 의미가 다르다.]] 또한 버블시기에는 임금이 펑펑 올랐지만 구인난이 온 뒤로도 임금상승률은 제자리걸음이다.] 그래서 통계 상으로 보면 1970년대 중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의 일본 열도 대개조 계획으로 건설붐이 분 이후로 취직이 가장 잘되던 시절로 손꼽혔고[* 사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7년까지는 일본이라고 해서 마냥 취직이 잘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당시 일본이 일단 취직하면 엄청난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정년이 보장되는 종신고용 사회였기 때문에 데미지가 덜한 수준이다.], 그래서 1960년대 중후반생들이 크게 혜택을 입었다.[* 다만 그 대신 부동산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평균적인 결혼 연령이 늦어져서 출산율은 떨어졌다.] 신규 구인 배율은 더더욱 환상적이라서 파트 타임직을 제외하고도 1.9를 찍었을 정도이며 비정규직까지 합치면 무려 4에 근접하는 수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 20대 연봉 1000만 '''엔'''. 물론 이 정도 급여는 그 당시에도 잘나가는 직장 한정이었기는 했지만 중소기업에서도 월급 펑펑 올려주었다. * 당시 도쿄 길거리엔 2010년대 이후 서울마냥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벤츠 190E]], [[BMW 3시리즈/2세대|BMW E30 3시리즈]]가 [[토요타 코롤라|코롤라]]마냥 돌아다녔고 [[페라리]]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국가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서브 컬쳐에서 버블의 정점 당시 팔렸던 [[페라리 F40]]이 많이 언급된다. 이 모델이 전세계에서 1,500여대만 생산되었는데 일본에만 200~300대였다고 한다. * 이 당시에 [[롤스로이스]] 판매량의 '''1/3'''은 일본에서 나왔다.[* 지금도 롤스로이스는 4~8억하는 최고급 명품차이지만 1980년대엔 자동차 조차 사치품이었다는 것을 감안하자. 한국도 1990년대 초까지 [[BMW]]와 아파트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거기다 그 당시 롤스로이스는 돈이 많아도 아무나 못 사는 그런 차였다.] * 정기 예금 금리가 '''8%'''.[* 사실 [[1980년대]]~[[1990년대]] 한국도 금리가 상당히 높았다. 이때는 [[저축은행]]이 아닌 '''그냥 은행에서도''' 1억 원 정도를 예금하면 1년에 1000만원은 거뜬히 이자 수입으로 받아 먹었다. 물론 그 대신에 기업이 아닌 개인이 대출 받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로는 시중 은행들의 예금 금리가 크게 낮아지면서 이 역할이 저축은행으로 넘어갔다가 저축은행들이 부실 경영으로 [[2011년]]에 쓰러지면서 다 옛말이 되어 버렸다.][* 당시의 대한민국 시중은행 엔화 예금금리는 가산금리 및 우대까지 감안해서 1년 정기예금이 8~10%는 기본이었다.] * [[프리터]]는 낭만의 대명사였다. 왜냐하면 취직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면서 여유롭게 지내니까.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서 알바비도 팍팍 올랐던 시절이다보니 알바만 해도 제법 여유롭게 먹고 살수 있었다. 물론 이 당시의 최저임금 금액이 시급 500엔대 정도하는 수준이었지만 명목상의 최저임금만 주면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보니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이 주었다. 하지만 이후 버블이 붕괴하면서 이들은 사회의 최하층으로 전락한다. 이렇게 낭만 찾으며 프리터로 지내다가 버블이 터져서 막장이 되고 나서야 닥쳐서 부랴부랴 구직을 시작했지만, 대부분은 버블 시대 때보다 한참 못한 여건으로 [[블랙기업]] 같은 데로 흘러들어 갔고 당연히 적응못하고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 클럽 문화에서는 [[파라파라]], [[줄리아나 도쿄]]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 야간에 [[택시]]를 잡으려면 1만 엔을 흔들어서 잡았다고 한다. * 지방에서도 [[건설]] 붐이 일어 굳이 필요 없는 곳에 보여주기 식 [[토목]] 공사를 진행하는 데가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100명 남짓 사는 섬마을에 다리를 2~3개씩 놓았으며, 주민 60명 사는 마을 앞까지 고속도로를 뚫어버렸다. 당시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과 건설업체 그리고 지역유지들간의 [[정경유착]]에 따른 전시성 공사들이었는데, 거품이 꺼지고 나서는 유지비가 부담이 되어 철거되거나 건설사들이 파산하는 곳이 많았고, 무리하게 공사를 밀어붙인 지자체들이 재정에 타격을 입었다. * '''[[소니]]는 할리우드 영화사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 [[라이벌]]인 [[파나소닉]]은 [[유니버설 픽처스]]를 인수.''' 하지만 버블이 붕괴한 뒤 파나소닉은 다시 유니버설을 팔아 버린다.[* 참고로 현재 유니버설의 모회사는 [[컴캐스트]]이다. 파나소닉에서 나온 이후 2004년에 [[NBC유니버설|NBC와 합병하고]] 2013년 컴캐스트에게 인수되었다.] * 일본의 부동산 [[재벌]] 요코이 히데키가 [[뉴욕]]의 상징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인수. [[http://news.joins.com/article/3657938|#]] 당시 미국 월가에선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최고치에 달했다고 한다. [[로보캅 시리즈|로보캅]] 3편에 당시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의 모습이 나온다. * 전세계 억만장자 중 70%가 일본인이었으며, 세계 1등 갑부가 [[세이부]] 창업자 츠츠미 야스지로였다. 그러나 이 흥청망청은 모두 거품 빨이었으므로 불과 몇 년도 가지 못한 건 물론이며, 이후 일본을 시련으로 몰아 넣게 된다.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일본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 큰 고생을 했는가 하면 여기에도 의문이 있으나[* 사실 중남미의 잃어버린 10년(1980년대)나 러시아의 잃어버린 10년(1990년대)와 비교해봐도 그 차이가 크다. 저 두 사례는 기본임금과 복지혜택마저 줄어드는 초유의 사태였던 데 반해서 일본은 최소한 1997년까지는 미약하게나마 임금이 올랐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가 쭈욱 침체였다.] 저런 호화 생활을 하다가 못하게 되면 시련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예 없이 사는 것보다 [[상실|있었는데 없어진]] 삶을 사는 게 더 힘들다 느끼는 게 사람 심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